한밭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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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예배찬양콘티(240609)
작성자 김영백 작성일 24/06/05 (21:36) 조회수 286

금주(202469)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주의 곁에 있을 때(C major)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C major)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C major) 

하나님 한 번도 나를(C major) 

사도신경 

큰 영화로신 주(A major) 

   

누가복음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먼저 분명한 것은 이 땅에서 누림이나 소유가 반드시 하늘나라에서의 누림과 영광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어떤 성공과 영화를 누렸다 하더라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와 부러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하늘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그 삶을 평가받고 그에 따른 상급과 영광을 누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가 머물러 있는 영원한 형벌을 받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부자는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되었고, 나사로는 어쩌다 그렇게 가난하고 처참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 사회의 제반 사항을 고려해 볼 때 당대에 그런 부를 쌓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부자가 음부에서 자신들의 다섯 형제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부자의 다섯 형제들도 부자와 같은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은 없이 호화로이 연락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여섯 형제가 모두 그렇게 남다른 부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노력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 부자는 금수저로 이 땅에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자랐고, 아버지의 유산으로 평생을 떵떵 거리며 살지 않았을까 합니다. 반면 거지 나사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이 가난하게 태어나서 어렵게 살다가 병까지 들어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합니다. , 요즈음말로 하면 흙수저로 태어난 것입니다.  

   

부자도 나사로도 자신의 선택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으로 이 땅에서의 누림은 극명하게 갈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다른 인생의 출발선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삶의 차이는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 같아서 이 땅에서는 결코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인생의 최종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누림과 소유와 여러 형편은 그들의 태어남에 따라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지만, 하늘나라에서의 누림은 그것과 상관없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잠시 머무는 이 땅에서의 누림보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의 누림이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누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것은 예수 안에 있다면 결코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누림을 제약하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하면 이 땅에서도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도 빼앗을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성패는 오직 예수님께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을 붙들면 어떤 삶의 환경에서도 우리는 승리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아무리 풍요로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그 끝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을 지키는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보증은 오직 예수 오직 믿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