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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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된장찌게와 장미꽃
작성자 임영택 작성일 03/07/13 (16:29) 조회수 5156

성도님들 안녕하세요?   제가 가입한 "기도하는 아버지들의 모임"이라는 카페에서 글 한편을 받았는데...사랑하는 님들과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늘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사랑하는 님들께 임하시길... 사랑합니다. 샬롬!! 7.13 주일 오후에 "꿈을 꾸며"  4교구 3구역 임영택집사 드림 ------------------------------------------------------- ☆된장찌게와 장미꽃☆ '뚜걱,뚜걱,뚜걱' 나에게 저녁임을 알려주는 익숙한 구두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날 같으면 습관적으로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기 위해 부억으로 갔겠지만 오늘 난, 가슴 살짝 설레임을 안고 화장대 앞에 서서 머리를 매만지고 루즈를 살짝 덧바르고 있다. 거울속의 화사한 지금의 내 모습에선, 새벽에 시골 촌부와 같았던 부시시함은 찾아볼 수 없다.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강의 전 만날 사람이 있다며 차가 막히기 전에 출발하기 위해서 힘들게 일어나 새벽부터 서두르는 남편을 내 몸이 피곤하다고 빈속으로 출근시켰다 졸음이 묻은 얼굴로 문만 빼꼼이 열고 "다녀오세요"라고 건성으로 인사하고 들어가다 거울에 비친 날 보았다. 한참을...천천히 그리고 눈에 힘을 주고 거울을 응시했다 그곳엔 아이들 키우고 집안일에 치여서 날 가꿀 시간은 없다며 핑계만 대고 살았던 지금의 내 모습, 정말 미운 내가 있었다 다 풀어진 퍼머머리, 기름기 흐르는 얼굴, 여기저기 잡히는 군살, 편하다고 입은 펑퍼름한 고무줄 치마.. 정말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서정주 시인은 우물에 비친 자신을 보며 참회의 글을 썼고 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오전 내내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내 이름도, 꿈도 , 시간도 없이 남편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남편에게도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어주지 못했고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에겐 잔인하리만큼 무관심하게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새벽에 물먹은 솜 같이 터벅터벅 걸어가던 남편이 왜 이리 보고싶은지 가슴속 그리움에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 오늘 저녁에는 파티를 열어야겠다 그리고 부엌의 요리들을 열심히 내오는 요리사가 아니라 곱게 단장하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안주인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이 저녁을 즐기고 싶었다 '띵동.띵동' 막 시집온 새색시의 수줍음을 안고 문을 열었다 "다녀오셨어요?" 남편이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나에게 남편은 "배고프다 얼른 밥 먹자"하며 신발을 휭 벗고 들어가 버린다. 난 너무 민망스러워 멍하니 남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뭐가 손발이 맞아야지...그럼 그렇지...' 보고픔이 원망으로 변하는 순간 남편이 뒤집어 벗어놓은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돌아서서 가려다가 다시 뒤집어진 구두를 보았다. 뒤축이 한쪽으로 몹시 닳아있었다. 부엌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현관에 그대로 섰다. 그리고 닳아빠진 구두 뒤축을 다시 보았다 구두 뒤축에는 남편이 하루종일 세상에 나가 살아온 길이 담겨 있었다 힘들고 고달픈 삶의 길이... 갑자기 가슴이 울컥거려 왔다. 부엌으로 들어온 남편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아니요" "그럼 집에 손님 오나?" "아니요" "그런데 반찬이 왜 이리 많아?" "많긴요 우리 식구들하고 배불리 먹으려고 했지요" 남편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당신 저녁먹고 어디 나가?" "아니요" "그런데 왜 그런 옷을 입었어?" "그냥 당신에게 예쁘게 보이려구요" 남편의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길이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져 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천천히 드세요. 뭐가 그렇게 급해요?" "나 오늘 종일 굶었어" 그러고 보니 남편의 눈이 쑥 들어가 있었다 "아니 왜요?" "아침엔 약속이 있었고, 강의 끝내고나니 점심시간이었는데 병원에 갈 시간이 촉박해서 바로 병원에 갔지 뭐야" "그럼 병원에서 뭐 좀 먹지 그랬어요" "그럴 시간이 있나? 그래서 겨우 참았다가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근처 음식점을 찾아 갔는데 음식점 문이 자동문이라 갑자기 스르륵 열리는 거야. 그래서 얼떨결에 들어갔는데...." 남편은 뭐가 우스운지 웃느라 말을 잇지 못한다 "왜 웃어요?" "있지 여보. 내가 오늘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알아? 딱 식당에 들어가 보니 실내 장식도 잘해 놓은 고급식당인거야. 잘 차려 입은 웨이터가 안내까지 하니까 괜히 기가 죽더라고. 그런데다 메뉴판을 보고 나니까 들어온 게 후회되는거야 그래서 깜빡 잊고 온 일이 있다고 말하고 나왔어" 남의 말하듯 하는 남편을 보니 가슴 저 밑에서부터 아려 왔다 "비싸봐야 얼마나 한다고.. 그냥 먹지...아침도 안 먹은 사람이..." 핀잔주듯 말했지만 이내 식탁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사람이 왜 울어! 내가 비싸서 안먹은 줄 알아? 한번이라도 나 혼자 그런 고급식당에 가봤어야지. 늘 우리 가족 아니면 친구들하고 갔었지... 그 땐 자연스럽고 편했는데 혼자니까 어색해서 나왔지." 이렇게 말하는 남편에게서 '나'라는 존재보다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머리에 박혀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일에만 매달려오느라 남편역시 '나를 위해서'라는 생각은 잊고 살아온 것이다 양복 한 벌 마음 놓고 사 입지 못하는 간 작은 남자로 선뜻 먹고 싶은 음식 한가지도 손을 내밀지 못하는 구두쇠로 변해버린 한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린 같은 모습으로 같은 아픔과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쌍둥이였다. "여보! 우리 아이들 공부시키고 밥 먹이느라 너무 고생 많이 했어요 얼굴이 까맣게 된 것 보세요 . 정말 고마워요" "당신 왜 그래?" "당신 구두 뒤축이, 다 닳은 당신 구두가 생각나서요 우리 식구들을 위해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어서 그래요. 여보 사랑해요" 그 날 밤 우리의 파티는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사랑의 시간이었다 힘든 순간도 있지만 서로를 위해 존재할 때, 함께 할 때가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난 출근 하는 남편의 발에 신발을 신겨 주었다 한 발, 한 발..처음이라 쉽진 않았지만 남편의 발을 만지며 말했다 "여보, 사랑해요..." 남편은 아무 말 없이 피식 웃기만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우리의 만찬장엔 장미꽃 한송이가 꽂혀 있었다. 된장찌게와 함께.. -김학중님 엮음 아내의 말 한마디가      남편의 인생을 결정한다 중에서 -   *들꽃* 기도하는 아버지들의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