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1부 예배 찬양 콘티(22. 11. 13.) | ||
---|---|---|
작성자 강성묵 | 작성일 22/11/09 (20:41) | 조회수 1540 |
2022. 11. 13. 주일 1부 예배 송리스트
1. 문들아 머리 들어라 F-G
> 2. 당신은 영광의 왕 G
3. 임재 Ab
> 4. 비 준비하시니 Ab
<말씀>
시편 24편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팀이 새로 앨범을 냈는데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아시는 ‘문들아 머리 들어라’라는 찬양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익숙한 곡이어서 반가웠는데 버전까지 좋아 듣기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의 댓글 중 이 찬양을 성경적으로 해석한 내용의 글이 있었고, 이 곡을 깊게 이해하는 데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함께 나누고 이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1. "문들아 머리들어라"라는 표현을 포함하여, 이 찬양의 가사는 시편 24편에서 인용된 문구입니다. 그래서 시편 24편이 어떤 상황을 위해 쓰여졌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법궤가 예루살렘 성 혹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다윗이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모시고 왔던 때 혹은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여호와의 법궤를 성전으로 모셔 들이던 장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문"은 예루살렘 성문 혹은 성전의 문이 될 것입니다. 두번째는, 첫번째 보다 조금 더 넓은 해석으로, 특정한 역사적 정황을 생각하기보다는, 여호와께서 전쟁에 능하신 영광의 왕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임재하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며, 성전 입성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가능한데, 저는 두번째 해석이 더 의미있고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3.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왜 "문들이 머리를 들어야"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문은 성문 혹은 성전의 문인데, 이 "문"은 인격체가 아닌 물체이므로 실제로 머리를 들 수는 없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특별히 시편 등에서 비유적인 어법으로 사용하는 의인화 기법입니다. 사물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방법이지요. 문들이 머리를 든다는 것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사실 이 해석들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문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다 감당할 수 없어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최대로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영광은 성전 건물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크고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문들이 여호와의 임재를 환영하며 경배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4. 이런 내용을, 고대 이스라엘 사회가 아닌,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 이스라엘에 있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 성전이 되어 주셨고,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인 교회가 곧 성전이 되었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십니다. 그래서 시 24편의 "문들아 머리들어라"는 의미를 더 깊고 넓게 해석해야 합니다.
5. 그래서 "문들아 머리들어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임재가, 그분을 믿는 신자들에게 임하신다는 의미이며, 성도들이 그 주님을 경배하며 그 임재 가운데 살아가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는 복음의 확장에 따라,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문들아 머리 들어라"는 문구는 이 세상 가운데 복음의 능력으로 주님의 임재가 확장되도록 한다는 명령의 의미를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으로 믿지 않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고, 긍휼을 나누며, 말씀을 증거하면서 이 본문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글이 길어졌습니다. 정리하면, "문들아 머리들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할 때 그분을 받아들이며 찬양하고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들이 주님을 경배하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일들이 우리를 통해 일어나게 되기를 소망하며 이 찬양을 부른다면, 성경 본문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귀한 신앙적 실천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