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예배찬양콘티(2203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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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백 | 작성일 22/03/02 (20:35) | 조회수 930 |
금주(2022년 3월 6일)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주의 곁에 있을 때(C majorr)
주 품에(C major)
나는 가리라(C major)
이 땅의 동과 서 남과 북(C major)
사도신경
전능왕 오셔서(F major)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셨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선택과 결정, 그리고 순종의 걸음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에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며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사탄의 미혹과 공격을 이겨내야 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나타나고 이루어지기보다, 예수님이 지니셔야 했던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집요하게 자극하여 넘어트리려 하였습니다.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마귀는 예수님의 육체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사용하여 돌이 떡덩이가 되도록 하라고 시험하였습니다. 또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천사들이 그를 받들어 줄 테니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단번에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도록 자신을 그렇게 입증하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본 사람들은 언제나 반응이 예수님을 이 땅의 왕으로 세우고자 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들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도 3년간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곁에서 보고 권능 있는 말씀을 바로 곁에서 들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도 행했으면서, 그 예수님을 은 삼심에 팔았습니다. 과연 유다가 돈에 대한 욕심으로 그렇게 한 것일까요. 어쩌면 유다가 노린 것은 예수님을 억울하게 곤경에 빠트리면 그것이 자극이 되어 예수님 스스로 자신을 입증할 권능을 행하여 로마의 군병도, 타락하고 부패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한 번에 쓸어버리고, 이 땅에 새로운 예수님의 왕국을 당장 이루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고통 중에 계신 예수님을 향하여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오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믿겠노라고...
사역의 시작부터 모든 과정에서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을 그 뜻에 철저히 복종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을 유혹하고 넘어트리려는 사탄의 간계를 철저히 물리치셨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절제하여 사용하였고 마침내 당신의 모든 능력과 신성을 철저히 감추고 마치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처럼 당신을 십자가에 내 놓으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라디아서 4:19)
My dear children, for whom I am again in the pains of childbirth until Christ is formed in you.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기를 어린 자녀가 성장하여 가듯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아니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이루어지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형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복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 뜻과 내 욕심, 나를 나타내고 나를 과시하고 싶은 모든 욕심과 욕구를 내려놓고 나의 삶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종의 삶의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우리 앞에 놓여도 어떤 유혹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해도 우리 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도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