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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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예배찬양콘티(160424)
작성자 김영백 작성일 16/04/21 (18:01) 조회수 4709

금주(2016년 4월 24일)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A major) 

우물가의 여인처럼(A major)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A major) 

은혜로다(A major) 

사도신경 

찬양 성부 성자 성령(G major) 


 

사람들은 대개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때 쓰는 얼굴도 있고, 직장에서 쓰는 얼굴도 있습니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만 사용하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나 나의 필요에 따라 도움을 받거나 내가 남을 도와줘야 할 때 사용하는 얼굴도 있습니다. 물론 크리스천은 교회에서 사용하는 얼굴도 별도로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하게 사용하는 얼굴이 같은 얼굴이면 좋으련만 대개는 아주 다른 얼굴들로 구성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의도적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한 채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얼굴을 갖는 이유를 가만히 따져보면 거의 본인과 관계된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 간이나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소위 안면을 바꾼다고 하는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내가 손해를 보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놀림을 받는다고 느껴지면 안면을 바꾸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차가지 입니다.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다가도 금전적 보상이나 진급이나 포상등과 같은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히면 드디어 그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꽤나 인격적인 사람으로 이해관계에 마치 초월한 사람처럼 행동하다가도 막상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가 나오면 표정을 바꾸고 원칙도 바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평소의 말과 표정은 예수님(?) 같은 모습으로 지내다가도 막상 예수님처럼 희생하거나 낮아지거나 헌신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느 틈엔가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누구라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관계된 일에 있어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입니다. 내가 더 수고한 것 같은데 내가 더 기여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래서 내가 마땅히 더 받아야 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내 몫이 작아지면, 내가 진급할 줄 알았는데 진급하지 못하게 되면, 내가 더 열심히 헌신하고 수고했기에 사람들이 내 수고를 인정해 줄줄 알았는데 모른 척 하거나 당연하게 여기면,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름 열심히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했는데 내 형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가벼이 수고한 다른 형제를 더 칭찬하면, 누구나 서운해질 것 입니다. 그리고 얼굴이 바뀌려고 할 것 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우리가 이를 악물고 이겨내야 할 것은 우리를 그 자리에 심으셔서 우리를 먹이시고 그런 환경과 상황을 통하여 우리를 다듬고 만들어 가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 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수고한 야곱의 수고를 보시고 마침내 라반의 것을 빼앗아 야곱에 주셨던 하나님, 애굽 땅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자비한 노역에 시달리며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빈손으로 출애굽하게 하지 않게 하시고 유월절의 그 밤 이후 애굽을 떠나면서 애굽 백성들에게 은금패물을 받아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편에 서서 자녀답게 성실하고 겸손히 헌신하며 자녀의 이름으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손해를 감수하는 자녀들의 수고를 결코 그냥 두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쩨쩨하게(?) 사람들과 씨름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내가 싸우거나 분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한 방(?)에 채워주시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뿐만 아니라, 그렇게 얻은 영예와 부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인정해 달라고 얘기하는 것 보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완전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변함없는 하나의 얼굴, 진면목(眞面目)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