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예배찬양콘티(2404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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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백 | 작성일 24/04/10 (10:39) | 조회수 374 |
금주(2024년 4월 14일)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A major)
주는 완전합니다(A major))
큰 꿈은 없습니다(A major)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A major)
사도신경
큰 영화로신 주(A major)
지난 주간에 참으로 황망하다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이십대 중반에 만나서 약 20년 세월을 함께 해온 직원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회사와 가정과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사람이 불과 일주일 사이에 병원에서 하늘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십이지장과 담관이 연결되는 부위에 있는 조직이 나중에 혹 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 사전에 제거하자는 의사의 권유로 복강경 수술을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수술한 다음날 췌장염 중세가 있어서 주말 동안 관찰하고 처리하기 쉽도록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평소 조금 약했던 신장 기능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폐와 심장 등이 손상되고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결국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 온 이별에 어떤 마지막 인사도 주고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했다가 오겠다는 가벼운 인사만 나누었었는데,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 귀한 친구였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누구보다 탁월한 인재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해도 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일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를 신앙적으로 흔들거나 공격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탁월한 실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독선적이거나 이기적인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연구 결과를 후배들에게 제공하여 배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일하는 동료나 윗사람들은 그는 수요일이면 교회를 가야하고, 금요일에도 교회를 가고, 그의 생활의 중심에 교회가 있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 친구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좀 애매하고 어려운 일들과 상황들을 그 친구에게 맡기면 안심이 되는 친구였습니다.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였습니다. 직장에서 믿음의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합니다. 일과 신앙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갑작스럽게 누구도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간단한 수술을 하러 제 발로 걸어서 들어간 병원에서 5일 만에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또 수습해야할지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착한 아들이자 믿음직스러운 장남을, 자랑스럽고 살가운 오빠와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된 부모님과 세 여동생 내외, 그리고 함께 교회를 이루고 사랑을 나누며 지내왔던 성도들을 위로하고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이제 정신을 조금 차리고 보니 사람이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새털보다 가볍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다고 하나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이 땅을 떠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 실감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자신의 재물을 쌓아둘 곳을 늘리고자 하는 부자에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중에 하나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하여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우리가 이루기 원하는 인생의 목표를 이룰지 아니면 이루지 못할지, 그것에 대한 최종 결정은 하나님의 손에 달여 있습니다. 설사 우리가 어떤 목표를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니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되, 오히려 현재 우리에게 허락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나의 오늘을 그 일에 매몰시켜서 주변도 하나님도 외면하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목표의 달성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두고 우리는 주어진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취할 마땅한 삶의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목표보다 목표의 달성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마침표를 찍으실지 알 수 없지만, 다만 우리의 오늘은 언제 하나님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잘 살지 전전긍긍하고 살아가지만, 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인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이 세상을 살았다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이 주 안에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면 그처럼 허망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제 우리 인생의 남은 시간은 잘 죽기위한 준비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죽기위해 사는 것이 어쩌면 가장 잘 사는 길일 것입니다. 언제 주 앞에 서게 되더라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이 길이 되시는 삶,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삶, 예수님을 따르는 삶,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예수님으로 만족하는 삶,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
하루하루 그런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