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예배찬양콘티(1506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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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백 | 작성일 15/06/25 (13:38) | 조회수 4695 |
금주(2015년 6월 28일)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오 이 기쁨(G major) 내게 강 같은 평화(A major) 나의 가장 낮은 마음(A major):후렴부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 채(A major) 나의 가장 낮은 마음(A major):후렴부 성도여 다 함께(A major)
기도하는 모임을 우리는 기도회라고 하고 기도했다는 뜻으로 기도회에 참석했다 얘기합니다. 그러나 기도회에 참석했다는 것이 기도를 했다는 것과 100% 동의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설사 기도회에 참석했다 하더라도 정작 기도는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에 관해서는 예배에 참석했다고 말하지 않고 예배를 드렸다라고 말 합니다. 그리고 예배에 참석했다고 하면 그냥 예배를 드렸다고 인정합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렸는지 예배를 잘 드렸는지 굳이 따져 묻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에 예배하는 그 자리에 외견상 가만히 앉아 있는 것으로 예배를 드린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 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배시간에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예배의 모든 순서에 참여했다고 해서 예배를 드린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마치 수업시간에 교실에 앉아 있었다고 해서 수업을 잘 들었다고, 공부를 잘 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수업을 잘 들었는지는 나중에 시험을 쳐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업을 잘 들었다면 그래서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시험을 쳐도 넉넉히 답을 쓸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니 수업시간에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수업시간에 공부를 잘 했다는 것은 아닌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예배시간에 그 장소에 앉아 있는 것이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예배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 하시고 계신 것, 그리고 하시기로 약속하신 것에 대한 인간의 흥겨운 응답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자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반응이며, 예배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삶의 통한 예배를 한 마디로 소명(Calling)으로 표현하고, 자신이 맡은 일은 언제나 하나님께 드린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즉, 예배와 예배의 자리를 예배당에서 삶의 자리로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배를 잘 드렸냐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확인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당의 예배에서 경험하고 만나게 된 하나님을 삶의 자리에서 인정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삶을 살아 낸다면 우리가 드린 예배는 잘 드려진 예배요, 잘 드리고 있는 예배의 삶이 되는 것이고, 아무리 예배시간이 감동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의 예배는 제대로 드려진 예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회의 순서는 대부분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채워집니다. 말씀을 듣는 시간이 없지 않지만 대개는 내가 기도해야 하는 시간으로 기도회는 채워집니다. 그러니 내가 기도해야 하는 시간에 기도에 집중하지 못했다면 기도회에 참석은 했으되 기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많은 경우에 그저 수동적으로 듣는 시간, 말씀을 듣고 찬양을 듣고 광고도 듣는, 그런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니 그저 듣기만 하면 예배가 요구하는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하기가 쉬운 것 입니다. 그러나 듣는 시간은 실상은 반응하는 시간입니다. 그 반응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는 결국 예배당을 떠나 삶의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렇게 삶의 자리에서 확인함으로 우리의 예배당에서 드린 예배를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한 주간 우리의 삶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다가 올 주일 예배를 결단하고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의 삶의 성적표에 ‘참 잘했어요!’를 가득히 채워 들고 기쁨으로 예배의 자리에 달려 나가기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