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예배찬양콘티(1408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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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백 | 작성일 14/08/14 (11:21) | 조회수 5580 |
금주(2014년 8월 17일)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예수의 이름으로(G major) 교회여 일어나라(A major)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A major)
금주에는 우연히 이런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겠다는... 특별히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오늘의 행복을 미뤄두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내일에 기대하는 행복은 어쩌면 우리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준비하고 계획한다 하여도 우리의 내일이 우리의 오늘보다 행복할 것이라는 어떠한 확실한 근거도 없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사과 박스 안에 상태가 좋은 사과도 있고 상태가 좋지 않은 사과가 같이 담겨져 있다면 어떤 것을 먼저 먹겠습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상할 것 같은 사과를 먼저 먹습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좀 오랫동안 좋은 상태를 유지할 것 같은 사과를 나중에 먹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매번 사과를 먹을 때 마다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을 먹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어쩌면 먹지 못하고 썩어서 버리는 것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먹는 것이 됩니다. 나쁜 것부터 먹는 방법은 늘 가장 나쁜 것을 먹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것부터 먹는 방법은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먹는 것이 됩니다. 실제 상황은 꼭 이렇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습니다만, 한 번쯤 우리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합니다. 그런데 B도 D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뜻을 정해서 할 수 있는 것은 C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예고 없이 찾아 올 D를 마주하게 될 텐데, 내일을 위해 오늘의 누림과 행복을 미루어두는 것이 과연 타당 하느냐 하는 것 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선택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과 그 행복을 나누는 것이 최선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나와 인생의 긴 걸음을 함께 하고 있는 그들과 오늘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기 원합니다. 행복하기로 행복을 나누기로 결심하여 선택하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도록 작은 것 하나라도 배려하고 나누며 섬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오늘 25년 만에 천주교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일로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잘 아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로 시작하는 ‘평화의 기도’를 지은 거지 성자 프란치스코를 교황의 이름으로 선택하고 가난한자 소외 된 자들을 돌아보며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추진하는 그의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서점에는 교황과 관련된 책들이 40여 종이 나와서 ‘명랑’과 관련한 책들과 함께 서점가를 점령하였고,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교황이 방문한 성지를 연결하여 새로운 관광 상품도 개발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청년들을 포함한 이 땅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열광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동안 선대의 많은 교황들이 누구나 누려왔던 그래서 그도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많은 부분을 스스로 포기하고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 소외된 자들에게 그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로의 변화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신문 기사에는 그를 권좌에서 내려온 교황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교회적으로 ‘하느님’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에서 인간의 땅으로 내려왔지만, 로마 교황이 권좌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데는 2천년이 걸렸다. 프란치스코는 2천년 만에 권좌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온 교황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살리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외면하면서, 사람이 만든 권좌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 온 사람에게는 그렇게 열광하고 호감을 보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 땅의 모든 아픔과 상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여러 문제들이 교황이 온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치유되고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교황이 와서 그들에게 그리고 특정한 문제들에 관심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상처와 고통 속에 있는 그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예수님의 사랑과 위로와 평안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참 자유와 회복을 전하는 교회는 과연 이 땅 어디에 있는지...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이 땅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있는 그들의 참다운 이웃이 되어야 할 터인데... 교회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의 열매가 맺히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길러내야 하는 데... 교회가 세상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분명한 목표요 사명임을 당당히 선포하며 살아가는 하늘 백성들을 세상에 파송해야 하는데...
교회가 새롭게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실수나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한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고 다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로 부르신 우리 주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교회임을 자각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빛으로 그리스도의 편지로 다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노래하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그분의 위대하심을...
교회를 통하여 이 땅을 고치시고 이 나라를 새롭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대하며 어노인팅 10집에 있는 ‘교회여 일어나라’를 금주의 찬양으로 올리려고 합니다. 깊이 묵상하시고 기도로 잘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