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예배찬양콘티(140518) | ||
---|---|---|
작성자 김영백 | 작성일 14/05/15 (14:31) | 조회수 6309 |
금주(2014년 5월 18일)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따스한 성령님(E major) 시선(E major) 지금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A major)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A major)
오래 전에 읽은 기독교 고전 중에 엔도 슈사꾸라는 일본 사람이 지은 ‘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카톨릭이 포교된 이래 16세기 말부터 갑자기 카톨릭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포교가 금지되고 사제는 추방을 당하고 신도들은 처형을 당하는 일본 땅에 신도들을 돌보기 위하여 밀항을 해서 들어 간 사제가 겪게 되는 엄청난 시련과 갈등을 그린 소설입니다. 잠복포교를 위해 도항을 했지만 선교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배신한 신도의 고발에 의하여 체포된 신부는 아주 혹독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가 배교하지 않으면 신도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게 됩니다. 거꾸로 매달린 채로 피가 조금씩 빠져나가 죽게 되는 고문을 당하며 고통 중에 부르짖는 신도들의 신음과 비명을 들으면서 신부는 절규하며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도 않으시고 악랄한 일본 관리를 벌하지도 않으시고, 차라리 고통당하는 신도를 대신 자신을 죽게 해달라는 절규도 외면하시는 듯합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많이 당황스럽게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아시나, 하나님은 내가 처한 이 상황을 알고 계시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나,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 것 인가,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건가... 때론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리게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내가 당한 이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내가 처한 그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고치기 원하시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처한 이 상황을 적어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해결해 주시던지 아니면 최소한 이런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나를 이해시켜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설사 그 뜻과 섭리를 안다고 해도 우리에게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없을 것 입니다. 내가 현재 당한 이 문제나 상황에 대한 이유를 알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 문제가 언제 어떻게 해결될는지, 결말이 어떻게 될는지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늘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먼 길을 여행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언제 어느 곳에 가는 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그 여행을 하느냐 입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원수 같은 사람과 함께라면 그곳은 지옥과 같을 것이고,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이 그 척박한 땅을 옥토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과 함께라면 그 여행은 정말 신나고 즐거운 여행이 될 것 입니다. 내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보다 오늘 내가 누구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처음에는 엄마나 아빠가 두 손을 마주 잡고 걷기 연습을 시킵니다. 그러다 조금 더 크면 아이를 뒤에서 잡아 세우고 한 두 걸음을 띄게 하고 손을 놓습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넘어지려 하면 곧 잡을 수 있도록 시선과 손은 아이 주위에 머물러 둡니다. 좀 더 크면 아이가 걷는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지켜봅니다. 그러다 넘어지면 얼른 다가가 일으켜 세우고 다친 곳은 없는 지 살펴보고 달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지나면 이제는 걷다가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지켜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라서 스스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영적으로도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도록 하나님은 때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내 뒤에 서 계시기도 하시고, 어떨 때는 넘어진 우리가 스스로 털고 일어서기까지 지켜보시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에게 그분의 시선을 떼지 않으시고 우리의 아픔과 어려움에 무심하신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우리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숙시켜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모르시거나 외면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떠나 계시거나 우리를 도울 힘이 없으심도 아니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히 세워 가시려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그 상황을 주관하시며 어쩌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우리들 보다 우리를 더 안타깝게 바라보시며 우리가 우리 주님을 더욱 온전히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믿음으로 성숙하기 까지 인내하시며 기다리시는 시간이 하나님의 침묵의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과 문제 앞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내 삶을 세밀히 빚어 가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끼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을 누리며 보여주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시선(視線)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모든 시선(視線)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