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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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예배찬양콘티(140525)
작성자 김영백 작성일 14/05/22 (03:44) 조회수 6510

금주(2014년 5월 25일)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따스한 성령님(E major) 

시선(E major) 

모든 상황 속에서(A major)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A major) 


 

저는 지금 지난 화요일 중국위성항법시스템 관련 학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2박3일의 일정으로 중국 난징(南京)으로 출장을 와 있습니다. 난징은 인천공항에서 약 2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곳 입니다. 난징은 북경(北京)과 대비되는 ‘남쪽의 수도’라는 뜻으로 명나라 때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고대 중국의 오나라, 송나라, 양나라, 진나라 등의 도읍지였습니다. 또한 1911년 중국 국민당의 최고 지도자 쑨원(孫文)이 중화민국을 세우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까지 중국의 수도이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이 중국 침략 전쟁 중에 난징을 점령하고 1937년 12월부터 1938년 1월까지 약 6주간에 걸쳐 항복한 중국군을 포함하여 민간인들까지 약 3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학살하는 난징대학살의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요일 오후에 잠시 시간을 내서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어쩜 그렇게 잔인하게 군인도 아닌 일반 민간인들을 그렇게 참혹하게 죽이고 부녀자들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잔인한 짓을 서슴없이 행할 수 있었는지... 잘못된 신념이나 정치 이념이 한 사람을 한 나라를 얼마나 악하게 만들 수 있는 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고도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위안부 문제처럼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도 사과하거나 뉘우치지도 않고 있으니... 


 

중국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호텔 때문에 적잖이 놀라게 됩니다. 이번에 묵게 된 호텔에서 별다른 이유나 설명 없이 당초 예약했던 Single Room을 Double Room으로 승급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방이 아니라 거의 아파트(?) 수준입니다. 욕실 딸린 방이 2개에, 저의 집 거실보다 큰 거실에, 주방에는 대형 냉장고, 전자레인지, 오븐레인지, 식기세척기, 드럼세탁기 등등 그냥 살림을 차려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방(?)을 이틀 동안 혼자 쓰고 있습니다. 지내면서 보니 이 호텔에서 기족단위로 장기 투숙하면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지은 호텔인 모양입니다. 어쨌든 운동장 같은 방의 한 모퉁이에 자그마하게 진을 치고 이틀을 보내고 있습니다. 목요일 오후에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끔은 사람들이 마치 학교 수업에 들어가듯이 예배를 참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배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출석에 의미를 둡니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 예배를 통하여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해 어떤 것을 배우거나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설사 공부하기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새로운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수업에 참여하는 것과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지식을 전달하고 배우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설교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 쌓고 간다면 그것으로 예배를 잘 드렸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수업시간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최고의 행위이자 우리가 드리는 최고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어떤 예배는 매우 싫어하십니다. 그런 예배가 얼마나 싫으셨으면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을까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예배를 드리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민이라고 자부하면서 지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 나라를 들어서 징치하셨습니다. 그리고 70년 동안 성전 문을 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인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드려 온 예배를 세어본다면... 저 같은 경우에는 지난 45년 동안 거의 주일 낮 예배는 빼먹지 않았고 주일 저녁 예배, 수요 예배, 금요 철야 예배, 새벽 예배, 목장 예배 등을 다 합치면 적어도 5000번 이상의 예배를 드렸을 것 입니다. 그러면 과연 제가 드린 그 예배 중에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예배는 과연 몇 번일까요. 긴 세월 꾸준하게 예배를 드렸지만 과연 그 예배 중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신 예배는 과연 몇 번 일까요.  


 

이번 주에도 우리는 예배를 드릴 것 입니다. 또 한 번의 예배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그 예배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드려지는 단 한 번의 예배가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분명히 달라 질 것 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바뀌지 않는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서 변화하지 않는 인생은 없습니다. 예배는 간절히 사모하고 기대하는 것만큼 은혜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에 어떤 기대도 간절함도 열망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대로 아무런 역사도 응답도 임재의 경험도 일어나지 않을 것 입니다. 그 반면에 예배에 대한 기대와 사모함과 예배를 통한 응답과 치유와 회복에 대한 간절함을 품고 나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사모하고 기대하는 것만큼 은혜가 부어질 것 입니다.  


 

또한 삶은 예배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예배는 삶에서 그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과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즉, 예배란 그 사람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 입니다. 6일 동안의 삶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다가 주일에 예배만 정성스럽게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십니다.(좀 표현이 불경스럽습니다만...) 한주간의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매일의 삶을 주께 예배를 드리듯 그렇게 최선을 다한 삶을 살고, 그럼에도 주 앞에 서면 부족하고 부끄럽고 연약한 삶의 모습을 감출 수 없어 있는 그 모습 그대로 겸손히 내어 놓고 긍휼하심과 은혜 베푸심을 구하며 감사와 사랑으로 드리는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줄 믿습니다.    


 

이런 예배를 통한 은혜와 복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큰 특권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