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예배찬양콘티(130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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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백 | 작성일 13/08/29 (14:18) | 조회수 7064 |
금주(2013년 9월 1일)의 찬양 콘티를 올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C major)
그렇게 물러갈 것 같지 않던 더위가 어느 새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렁찬 매미 소리는 사라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아직 더위의 끝물이 남아 있어서 하루의 일교차가 매우 큽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복 받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복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참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라는 표현에 익숙해 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나 일이 있으면 ‘복을 받았다’라고 하거나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로또에 당첨되었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복 받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정말 로또가 복인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 어떤 일이 잘 풀리거나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복을 받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 보면 복을 받았다는 것은 상당히 한시적인 표현입니다. 복이 주어졌지만 그 복이 움직일 수도 있음을, 그 복이 잘 보존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돈이 들어오면 복을 받았다라고 하지만, 그 돈이 떠나가면 복이 떠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하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또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복을 받았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자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면 복을 받았다라고 하던 그 자녀로 인하여 근심 걱정이 안겨지기도 합니다. 중한 질병이 발견되면 당황스럽지만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할 수 있으면 복을 받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을 받았다는 말은 모두가 어느 순간에 일어난 결과를 보고 얘기를 하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그런데 시편1 편에서는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며 그 행사가 형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느 순간 어떤 일이 잘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해도 그 과정이 형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복 있는 사람’으로 이 땅을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복 받은 사람’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아서는 안 됩니다. 순간 악인의 꾀를 쫓아서 당장은 대박이 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복 받았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복 있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죄인의 길로 가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일순간 복 받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 형통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복 있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무엇을 조금 얻었다고 남보다 조금 더 가졌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복 받았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오만한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복 있는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휘황찬란한 어떤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아도, 당장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복 받았다’라고 할 만큼 손에 쥔 것이 없어도,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듯이 살아가는 것이 즐겁고 감사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가뭄에도 잎사귀가 마르지 않도록 해 주시고 철이 되면 열매를 맺게 해 주시고 어떤 일을 해도 막힘이 없는 형통함으로 인도해 주셔서 마침내 그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끔 해주실 것 입니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복을 나누고 베풀어줘야 할 사람들입니다. ‘복 받은 사람’을 부러워말고 ‘복 있는 사람’ 답게 살아가기 원합니다.
이번 주부터 예배순서가 약간 바뀌어서 찬양 콘티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일찍 시작하는 찬양으로 더 큰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