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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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예배찬양콘티(240707)
작성자 김영백 작성일 24/07/03 (21:38) 조회수 401

금주(202477)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F major)  

목마른 내 영혼(F major)  

이전에 왜 노르고 있었을까(F major)  

나의 맘속에 온전히(C major)  

사도신경  

큰 영화로신 주(A major)  

    

야곱을 묵상하다 보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야곱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3대째 신앙을 이어가는 모태 신앙인입니다. 또한 야곱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60세였고 175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적어도 야곱과 에서는 청소년기를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부름을 받았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 이삭을 어떻게 주셨는지, 모리아 산의 번제 사건은 얼마나 극적인 반전이 있었는지, 그리고 애굽에서 가나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과 이삭을 지켜주셨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무릎에 앉아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에 대한 열망, 그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욱 많이 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야곱에게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야곱은 첫째가 아니라 간발의 차이로 둘째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했던 리브가는 아마도 야곱이 복중에 있을 때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저 앉아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냥으로 지치고 배가 고픈 형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그렇게 장자의 명분을 샀지만 그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거래로 에서가 자신을 형으로 불러주거나 대우해 주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야곱을 장자로 인정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 이삭이 장자인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려고 하는 그 순간,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행동은 형 에서에게 야곱을 죽이고자 할 만큼 지울 수 없는 원한을 샀고, 결국 형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했던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야곱이 가만히 하나님의 뜻을 믿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텐데, 야곱은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기보다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다 하더라도 내 힘으로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외삼촌의 양떼를 치는 동안 외삼촌은 야곱의 품삯을 10번이나 바꾸어 가면서 그를 착취하다시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편에 서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품삯의 조건을 라반에게 제시하게 하시고, 라반의 것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조건, 흰 양과 염소만 있는 떼 중에서 줄무늬, 얼룩무늬, 점박이, 검둥이로 태어나는 것을 품삯으로 하겠다는 말도 되지 않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으로 분명히 보여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마치 양과 염소의 DNA를 바꿀 수 있는 양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로 튼실한 양과 염소의 수태를 조정하려고 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야곱에게 분명히 고향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셨고, 심지어 그보다 앞서서 행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시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또 여러 꾀를 내기 시작합니다. 미리 형에게 종들을 보내어 분위기 파악도 하고, 예물을 앞서 보내려고 준비도 하고, 자신이 거느린 떼를 두 떼로 나누어 보기도 하고, 별생각을 다 해보고 기도도 해보지만 그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도, 형을 만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야곱은 모든 가족과 소유물은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은 홀로 남아 마지막까지 그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기다리기보다 늘 자신의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그의 삶의 방식을 온전히 내려놓게 하십니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서 하나님의 뜻과 일을 이루겠다고 하는 욕심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셔서 평생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시고, 자신의 꾀와 힘을 내려놓도록 하십니다. 그저 하나님의 일하심을 잠잠히 기다리며 바라볼 수 있도록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구했지만, 그리고 누렸지만 늘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을 얻고 취하려고 애써왔던 야곱을 내려놓고, 이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대로 믿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도록 야곱을 새롭게 빚으셨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3대에 걸쳐 신앙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신앙의 1대에서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설득하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심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세워 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평생은 하나님을 배우고 믿음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2대째 그 아들 이삭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전수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신앙이 전수된다면 참 좋을텐데, 이제 3대째 신앙에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성은 인정하지만,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앞당기고자 하는 인간적인 욕심으로 가득찬 야곱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원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과 사모함은 없는 에서로 나누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혹 이렇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좋고 간절히 사모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없는 신앙,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기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잠잠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지 못하여 조급해하는 신앙,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한데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나의 힘과 노력과 지혜를 앞세우고자 하는 신앙, 이런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신앙,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이기 원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의 모든 것,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의 모든 것, 우리가 이루고 싶고 갖고 싶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의 일 하심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신앙으로 성숙해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