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랑해용 ^*^ 두란노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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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영택 | 작성일 09/09/14 (17:18) | 조회수 3849 |
안녕하세요~~행복한 가을입니다.
두란노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에서 감동을 함께하신 형제님자매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주위 분들을 추천해부신 분들, 중보로 후원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해드립니다.
앞으로도 수료하신 분들과 함께사랑을 나누며, 스탭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대전에서 금년에는 마지막으로 개설하는 두란노아버지학교와 어머니학교를 안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과의 행복한 시간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한밭제일장로교회 아버지학교 도우미 임영택집사드림(016-213-1224)
대전35기 아버지학교 개설
- 일시 : 2009.10.31 ~ 11.28 (5주간 매주 토요일 오후5시~오후 10시 30분)
- 장소 : 성남장로교회(동구 성남2동 504-12, 용전동 4거리) 전화 042-622-6452
- 회비 : 12만원 (입금 선착순 120명)
- 등록방법 : 대전아버지학교 홈페이지(www.dfather.org)에서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계좌송금(계좌번호는 인터넷으로 접수하면 공개됩니다)
- 등록시작 : 2009.9.29(화) 10시 부터 ~ 마감시까지
- 문의/연락처 : 개설팀장 박영만형제(011-9818-4000)
대전16기 어머니학교 개설
- 일시 : 2009.10.20 ~ 11.17(5주간 매주 화요일 오전10시 ~ 오후 3시 30분)
- 장소 : 산성감리교회(서구 정림동 소재) 전화 042-585-8111
- 회비 : 10만원(선착순 120명)
- 등록방법 : 계좌송금 후 전화(아래 문의/연락처로)
예금계좌 : 농협 417-12-051611(예금주 박종희)
- 문의/연락처 : 정예숙(010-8843-6436)
박종희(010-6415-6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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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두란노아버지학교 홈페이지에 2009.9.14 게시된 글입니다.)
이번에 저희 아버지께서 아버지학교을 졸업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저희 아버지는 할아버지십니다.)
아이러닐컬하게도 3개월전만 해도 저희 집안은 황혼이혼이라는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몇명의 변호사와 법원 그리고 수십군데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을 만났습니다.
저희는 더이상 부보님의 문제에 얽매여서 저희가족과 저희의 삶을 어려움을 겪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가 겪었던 내용을 저희 친척어른들과 또 직장 상사 동료, 교회의 어른들 그리고 목사님, 의사, 변호사들과 나누고 또 당사자인 부모님들도 이혼만이 우리 집안의 고통의 어려움의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요양했던 곳의 연로한 의사께 저희 삶에 대하여 하소연한 후 연로한 의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제분들의 삶은 해가 뜨는 삶의 과정에 있고 부모님의 삶은 해가 지는 삶의 과정에 있다네 부모님의 삶에 더 이상 얽매여서 살지 말게나 부모님의 삶을 그들이 알아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하시게 하고 자제분들은 자제분들의 가족과 자제분들의 삶을 챙기게나"
그래서 요양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한 자리에서 우리는 이혼 서류를 가지고 와서 작성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그전과는 다르게 180도로 변하셔서 절대 이혼할 수 없다고 하셨고 어머님께서는 한없이 눈물만 흐르는 등의 약한 자세를 취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진행이 안될 것 같아서 "아버지 저희는 이런 모습을 한두번 본 것이 아닙니다. 또 잘사신다고 수백번 말씀하셨습니다. 몇 번을 보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변하시지 않으시고 또 똑같은 문제로 저희를 어렵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저희도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텔레비젼을 보세요. 도대체 자식때문에 부모님들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것은 보지만 부모님 때문에 성인이 된 자식과 손자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어디에 있나요?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아버지학교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다니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한없이 울으시면서 저희와 약속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가족사는 일반적인 한국가정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식과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셔서 저희는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고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자는 날은 특별한 날(추석, 설날)외에는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성격이 내성적이시고 약주와 담배를 많이 하셨습니다.(저희 할아버지는 만취한 후 귀가하다가 도로에서 객사를 하셨고 저희 큰아버지는 술 때문에 암에 걸리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대화는 일반적인 대화보다는 약주를 하신 후에 폭언과 폭력 그리고 반복적인 내용의 대화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가장 싫은 일중 하나가 막걸리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막걸리를 드시고 그이후의 있을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렸을적 부터 커가면서 어른이 되며 절대 술을 마시지 않을 걸라고 다짐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이유 때문에 마시지 않지만..
저희 집안에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삶을 겪는 부분들인
- 가족의 생일에도
- 초, 중, 고, 대학교 입학 졸업에도
- 군 입대 제대 및 해외 근무에도
- 결혼 및 손자가 생겼어도
- 주식으로 몇 억을 탕진할 때도 재개발 지역의 집의 몇 채가 아파트가 생겼을 적에도
- 몇 억의 건물과 몇 억의 년 수입이 있을 때도
- 누나의 선천성 (심장병)과 후천성 (우울증)및 소천에도
- 교회을 다니면서 봉사하고 선교단체를 다니면서 제자화 사역을 하고 아웃리치를 가고 회사 동료 및 상사에게 복음 및 교회를 함께 참석하여도
가족이라는 단어는 평안과 사랑, 안녕보다는 불안 불신 그리고 문제였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아버지학교를 다니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졸업하실 것이라고는 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시지도 않고 교회 다니는 것 때문에 저희에게 많은 억압과 폭언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 중에 한명은 교회를 다니면서 성인되어서 가출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때문에 저는 어렸을 적에 "예수"라는 이름 때문에 저희 집안이 어렵고 또 소란이 나는 것을 보았고 교회의 독선적인 유일신 사상에 대하여 분노와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아버지는 아버지학교를 다니면서 몇 가지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가 회사에 갔다 오면 밤에 누워서 무슨 책을 보시고 계속 글씨를 쓰고 지우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좋아하시는 야구도 중국무술 영화도 보지 않으시고..
또 갑자기 방청소를 하시고 빨래를 하시고 또 맛있는 과일을 사오시고 같이 먹자고 하시고
또 어머님께서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코팅된 종이를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자필로 쓴 사랑하는 나의 아내 20가지 이유였습니다.
그전에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며 잔소리로 듣던 제가 그런 변화된 모습을 보고 경청하게 되는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실 전에 아버지에게 편지을 수십통 받았습니다.
그편지의 내용은 정말 우리가 가족인가라고 오해 할 정도로 원망과 조소 그리고 협박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같은 필체로 사랑, 은혜, 평안 그리고 감상의 내용으로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또 교회도 다니신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늦은 밤 새벽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앰블런스를 타고 부모님을 강제 입원시키지도,
변호사를 만나지도,
인권위원회를 만나지도,
더 나은 시설의 알콜 중독병원을 찾아다니지도,
이혼을 위해 법원 및 변호사 사무소를 찾아다니지도,
또 부모님의 잘못된 판단에 의한 사업 때문에 대출을 막는데 집 담보와 저희 몇 년 간의 월급을 막기 위해 소비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부모님에게 했던 효도 중에 결혼, 대학입학, 건강, 손자, 작은 정성, 생일, 그리고 안부 인사와 ,여행 등이 있지만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들께서 서로 통하게 할 수 있었던 아버지학교 입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학교는 저희 집안에 축제였습니다.
저희 온가족 및 친척 및 교회집사님들이 왔습니다.
부모님께서 서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포옹하고 6시간(정말 적은 시간이지만)이라는 같이 즐겁게 계신 모습에 저와 가족 및 친척들은 눈물이 났습니다.
또 아버지의 솔직한 간증에도 놀랐웠습니다.
세족후에 졸업장과 뺏지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이 기쁨은 제가 대학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느꼈던 기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또 세족식에서 얼마나 어머니께서 울으셨던지 눈이 부었습니다.
내 인생에 가정이라는 것이 가장 따뜻함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또 내 인생에 아버지가 가장 자랑스럽고 좋았던 날이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저희 집안에 장녀였던 우리 누나가 함께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누나가 아버지가 변화된 모습을 보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참 아이러니컬하게 아버지학교 졸업식 다음날이 저희 누나 소천된 1주년입니다.
추모예배를 내일 드릴 것인데 아버지께서 함께 드리며 누나도 기뻐할 것입니다.
마지막 아버지학교 스태프들 및 개설교회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과거에는 "예수"라는 이름은 저희가 몰랐고 또 알았을 때는 저희의 집안이 분열되고 서로를 미워하였고 친척들에게 억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라는 이름 때문에 저희 친척들 중에 가장 좋고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희 집안에 이렇게 축복해주신 것처럼 저희 친척들에게도 "예수"라는 이름이 들어가기 소망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