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게시판

한밭게시판
아름다운 소망
작성자 정하득 작성일 06/07/17 (18:05) 조회수 3511

      (  호스피스는 생명사랑운동,.함께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 ) 아침상을 물린 후 진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기대어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뜰 앞에 활짝 핀 코스모스가 아침 이슬을 흠뻑 머금고 갈바람에 한들거리며 손짓을 한다. 가을 만 되면 소녀처럼 가슴앓이를 하는 아내와 함께 오늘은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그 때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화장을 하던 아내가 먼저 수화기를 든다. 무어라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 여, 여봇! 틀렸어.” 아내의 시선과 맞부딪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오고갔다. 아내의 설명을 들으며 승용차를 병원으로 몰았다. 아내는 여행이 못내 아쉬운 듯 입술을 꼭 다물고 말이 없다. 병실로 들어섰다. 먼발치에서 박장로가 우리들을 보았는지 손을 흔들어 보인다. 초췌하고 핏기 없는 창백한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발걸음을 우뚝 멈출 수 밖에 없었다. “ 어서 오게! 바쁜 사람 공연히 불러들였나 보군! 보고 싶어서 … ” 박 장로는 고향 문병객으로부터 우리 소식을 전해 듣고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단다. 췌장암 말기로 2, 3 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도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짓더라는 그의 아내 임 권사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 오, 주님 !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시던 장로님을 이렇게 불러 가시려구요.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인생이란 한낱 이슬에 불과함을 다시금 절감한다. 고향을 떠나 온지 27년 만에 만난 그는 나와 같은 연배로 청년시절부터 CC활동을 하던 믿음이 돈독한 형제였다. 허물없는 나의 신앙 상담자였고 자상했고 봉사활동에 늘 앞장서곤 했다. 그와 고향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동안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반듯한 신앙 자세와 또 이미 죽음을 초월한 평안을 누리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건너편 병상에 누워있는 50대 한 여성이 펴놓은 성경에 얼굴을 파묻고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잠시 후 그녀가 섬기는 교회 담임 목사님이 그녀를 심방 했다.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를 위한 목사님의 간절한 위로와 권면이 시작되었다.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신유에 대한 나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죄의 대가로 징계 당하는 것이니  사단에 이끌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고 강권하는 것이 아닌가! 혹자는 병은 믿음으로 고쳐야지 그 어떤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증거라며  약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광신자(?)적 심방을  목격하기도 했다.   선천성 기형아를 생산한 부모의 치명적인 고통 사례를 이야기 하면서 이는 그 부모의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 하기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주신 것과 같이 형제님의 연약함은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니 낙심하지 말고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진다면 육신의 치유는 물론 하나님의 크신 상급이 있겠노라는 권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천성 기형아는 유전적이거나 수태과정에서 양 부모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생긴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 이미 밝혀진 사실이 아닌가? 인간의 질병도 그와 같으리라. 하나님이 주신 정결한 몸(성전)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리하지 못하고 최선의 노력을 했다 하더라고 우리가 더럽힌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구 환경 속에서 질병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모두가 하나님의 자연의 질서를 파괴시킨 인간들 스스로 자초한 업보라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 일까? 하나님을 잘 믿고 열심히 기도를 해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육체요. 육칠십이 넘어서면 노쇠하기 마련이고 다음 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 하랴?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문제를  침묵으로 일관 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환우 곁에 있는 가족이나  의사,  믿음의 식구들이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끊임없는 중보기도로 병이 꼭 낫는다는 믿음을 심어줄 때 병세가 회복되는가 하면 완치 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이를 의학적 용어로 플라시보 효과라고도 한다. 말기 암 환자에게 병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영양제를 투여하면서 이는 강력한 모르핀이니 곧 통증이 사라진다고 말한 결과  곧  통증이 멎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는 임상 실험을 의학적으로 위약 효과라고 하고 치병 효과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상 임신 상태에 있는 여인이 그로 인해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고 유방이 커지며 월경이 멎고 헛구역질도하며 복통을 일으키기도 하나 뱃속에 포태되었거나 태아가 성장했다고 하는 일은 전무후무 하다. 이와 같은 일들이 증명하듯이 인간의 믿음은 육체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주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신유란 무엇인가? 고통스러운 육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를  확신 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우리 신체의 모든 기관을 조절하시고 통제하시며 신유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갈라디아서에 성령의 열매로 사랑, 기쁨, 평안, 인내, 양선, 온유, 절제, 충성, 친절 등은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모든 세포들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 시키는 자연치유력을 가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품들이다. 이를 우리가 신뢰하지 못한다면 신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신약시대 주님께서 병을 고치셨던 것은 그 자체만을 위하여 행하신 적은 거의 없다.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그 일을 행하셨다. 인간의 질병 그 자체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내재해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질병은 신체적 돌봄을 통해서만 치료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영적 케어를 중시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이 영적이란 사실에 주목하여 이미 세계보건기구가 영적케어를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 의대 학장이었든 허버트벤슨 박사는 병원을 찾는 환자의 60%-90%가 신경성이나 정신적 결함에서 온 질병이라고 했다. 미 국립노화연구소가 400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독실한 신앙인은 정신적 불안과 관련된 질병이 매우 낮게 나타났으며 비 신앙인들에 비해 자살률이 4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신앙인들의 긍정적 사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 삶을 누려가는 행복감 때문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도스토 에프스키의 소설「카마라조프 형제들」에서 육체적 영역에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당신은 기적으로 인간을 노예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기적에 근거를 두지 않는 자유롭게 주어진 신앙을 원하실 것입니다.” 라고. 우리는 육체의 질병 치유라는 한가지지에 만 집착하여 보다 더 큰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다. 의학적 신앙적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이 종국으로 치달아 임종이 코앞에 다가올 때 희망이 없다고 절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 순서를 예비하고 계신 것을 영적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육체가 아닌 인격적 치료를 손대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사랑이시다. 무너지는 육체 앞에 횃불처럼 훨훨 타오르는 영적 거듭남이 그것이다. 이 영적 거듭남은 매우 강열하여 불치의 육신은 문제도 되지 않는 경우를 말기환자에게서 자주 관찰 할 수 있었다. 박 장로는 췌장암 말기환자 답지 않게  평안을 누리며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한 달 남은 내 생을 나는 하나님 앞과 나의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 앞에 똑똑한 의식을 가지고 완전히 깨어서 그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를 혼미케 하는 그 어떤 의료적 치료를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극심한 통증으로부터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일에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내 남은 생이 이 땅에서 최고의 삶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 박 장로를 위로한다고 방문한 나는 죽음 앞에서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한 그의 모습과 밝은 미소, 하나님에 대한 끝없는 사랑, 믿음, 소망이 강한 전류처럼 내게 전이되어 옮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분명 크리스천들에게 최후로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며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 장로와  아쉬운 작별을 나누면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 오 하나님 ! 제게도 박 장로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마지막 삶을 주시옵소서 ! ” 박 장로의 방문으로 정오를 넘어서야 여행길에 올랐다. 달리는 승용차 차창 밖으로 가을 하늘 아래 활짝 핀 코스모스가  마냥 하늘거리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대전 호스피스 고문 정하득 ( 042-534-0673,011-9819-9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