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주께서 행하신 일<아버지 학교 후기>(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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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희규 | 작성일 05/08/21 (23:16) | 조회수 3363 |
참패한 도박 인생, 진정한 승리에 눈뜨다 ---------------------------------------------주원섭<아버지학교 서울 서부 6기> ============================================================================= 이 글은 월간 '아버지' 2004년 11월호에 실린 글로서 한 사람의 불신자가 아버지학교를 통하여 주님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저는 1958년 전남 신안에서 5남1녀 중 4남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기며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즐거운 개구쟁이로 자랐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방에서 보내고 서울에 올라온 저는 친구의 결혼식 때 사회를 보다가 신부측 친구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주변의 유혹이 있기 시작 했는데 도박하는 친구들로부터 한판 하자는 권유에 한 번 두 번 하던 것이 점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고 결국은 당시에 여섯 칸 정도 했던 매장이 겨우 두 칸 남을 정도로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제 속에 있는 근질근질한 그 무엇인가가 저를 또다시 도박판으로 불러내고 다시금 그 한판의 유혹에 넘어가서 급기야는 도박이 주업이 되고 가게 일은 부업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밤낮으로 도박에 빠져 있던 저는 일주일이면 집에 들어오는 날이 겨우 2~3일 정도이고 허구한 날 도박장에서 살았기에 내 자신이 생각해봐도 한심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정은 완전히 뒷전이었고 가정에서의 불화와 부부 다툼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악순환은 끝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저의 도박장 출입이 잦을수록 잃는 돈과 싸움 횟수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새벽 3시나 4시에 동네에서 고함소리와 부수는 소리가 나면 그것은 우리 집이었고 저의 도박 생활에 간섭하는 아내가 미워서 부숴버린 가제도구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어느 날인가 저는 아내가 도박장에서 잃어버리는 돈이 아까워서 그런다고 생각하여 하루는 딴 돈을 아내에게 주며 생색을 냈는데 글쎄 제 아내는 “내가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아?”하면서 제가 준 돈뭉치를 창밖으로 집어 던지며 더욱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얼른 아이들을 시켜 주워오게 하긴 했지만 그러는 아내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친형제들도 포기한, 도박에 미친 사나이> 당시 교회에 열심인 아내는 기도하며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 같았지만 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가 도박으로 잃어버린 돈이 억대를 넘어섰고 빚도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워서 천장을 보면 천장의 도배 무늬가 카드로 보이고 잠이 들면 꿈 속에서도 카드를 했으며 심지어 꿈 속에서 혼자 카드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어떤 날은 비록 꿈속이었지만 돈을 많이 따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기도 하였습니다. 잃어버린 본전과 늘어나는 빚에 쪼들려 살던 저는 결국 도박장 하우스를 개설하고 뒷일 보는 꽁지까지 동원하여 정식으로 도박장을 차린 하우스장이 되었습니다. 잠시 동안은 하우스 개설 덕을 보는가 했지만 선수가 모자라면 대신 뛰어 들어가서는 홀라당 잃어버리고 하우스 개설 뒤에는 더 많은 돈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게 되었고 가정과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때까지도 조용히 기도하며 지켜보던 아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은 우리 동네의 유명한 ‘쓰레기봉투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도박에서 돈을 따면 술 한 잔을 하게 되는데, 딴 기분에 돈을 쓰다 보니 자연히 여자가 따르게 되고 가끔 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행동을 몇 년째 지켜보던 아내가 어느 날은 제가 도박장에 간 사이에 무려 3시간에 걸쳐서 나의 모든 물건을 꺼내놓고는 가위로 조각조각을 낸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양복은 물론이고 외출복, 속옷 등 심지어 벗어 놓은 양말까지 나의 모든 의류를 하나도 남김없이 아내의 가위질에 잘려 나갔습니다. 이때 집 밖에 내놓은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무려 다섯 개나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나중에 보게 된 저는 기가 막혀 아무 할 말이 없었고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몹시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 간에도 아내는 나의 도박을 막으려고 숱하게 말렸었고 도박하다 붙잡혀 15번의 파출소행과 5번의 경찰서행도 대부분 아내의 신고로 이루어졌었기에 제 자신이 더욱 참담했습니다. 그 때쯤에는 저의 친형과 동생들도 제 아내에게 이혼을 권유하던 때였고 제 자신도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참자며 이혼을 보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도박을 향한 저의 열정은 식을 줄 몰라서 주로 낮 시간에는 제가 가게를 보고 밤에는 아내가 가게를 지키는데 선수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도 교회에 간 아내가 오지 않으면 저는 안절부절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습니다. 교회에다 똥물 부어 가지고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소리 지르고 아내가 들고 있는 성경책을 뺏어서는 찢어버리고 아내가 배우던 교회 교재도 찢어 버렸고, 그 외에 교회에 관련된 책은 모조리 제 눈에서 사라지든지 찢겨져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각 카드마다 연체되어 카드사로부터 시달림을 받는 신세가 되었고 가게와 집 그리고 모든 재산은 아내의 명의로 바뀌었으며 나의 많은 채무도 아내가 대신 갚아야하는 처지가 되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갖고 빚 때문에 지방으로 도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학교와 빚을 건 아내의 도박> 그러던 중 아내가 채무의 일부를 대신 갚아주겠다며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학교인가 뭔가는 곳을 참석하라는 아주 우습고도 쉬운 조건이었습니다. 그까짓 것 토요일만 5번 참석하면 된다는데 어려울 것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 빚도 갚아주고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도 조금은 덜어 줄 수 있는 것 같아서 쉽게 응했고 저는 수료 후에도 교회에는 다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아버지학교에 등록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이미 서부 5기가 끝나자마자 다음날 교회의 아는 분을 통해서 서부 6기에 신청을 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서부 6기 아버지학교가 시작되기 전에는 혹시나 저의 마음이 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미 아버지학교를 수료하신 장로님께서 입학금을 내주셨고 제 아내는 기도하며 도와주시는 장로님이 고마워서 울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저는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 아버지학교를 끌려서 갔는데 첫째 날은 분위기도 어색하고 역시나 지루했습니다. 또한 제 적성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2주차 때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돈을 내준 장로님의 성의를 봐서 할 수 없이 갔는데 학교 다닐 때도 안해 가던 그 아버지학교 숙제 때문에 정말 부담이 됐습니다. 또한 강의와 영상을 보면서도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3주차 때는 추석이 끼어서 2주일만에 열리게 되었는데 노름판 친구들이 물이 좋으니 어서 오라고 연락이 와서 귀가 번뜩 띄어서는 가슴이 설레고 있는데 조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형제님 이따가 오실 거죠?”라고 묻기에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몇 년 전 돌아가신 작은 어머니가 생각나서 이렇게 핑계를 대었습니다. “오늘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급하게 상가 집에 가야하기 때문에 오늘은 아버지학교에 못 가게 되었습니다.” 못 간다고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고는 옛날 선수들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집요한 조장님은 아내를 통하여 사실을 확인 하시고는 우리 교회의 다른 분들을 통하여 다각도로 연락을 취해 결국은 서부 6기에 참석한 한 형제의 봉고차에 끌려서 3주차를 참석하게 되었고 급하게 숙제까지 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3주차 때 서로의 나눔을 통하여 급하게 써간 아내의 편지를 읽으며 가슴 한 구석이 묘한 느낌으로 저려옴을 느끼게 되었고, 편지를 읽으며 행복해하는 많은 형제들이 한없이 부러워 보였습니다. 숨김없이 나눔의 시간을 갖고 또한 삶의 고백을 통해서 제 마음 속이 조금씩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4주차를 참석하고는 8년 동안에 4번밖에 교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제가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 내일부터 교회에 다닐게”하니까 아내는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지 “가야 가는 것이지”하며 “두고 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아내였지만 작년 10월 이후 노름을 끊고 매 주일 교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니는 저를 요즘에는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5주차 수료식 때 자녀들에게 아빠가 수료식을 한다고 하니까 큰딸은 큰 기대 없다고 하고 막내딸은 하는 말이 ‘우리 아빠 졸업시키지 말고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마지막 수료식 때 18년 동안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아내의 발을 잡고 기도하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노름판을 찾아 다니던 발이었고 빚쟁이들과 싸우던 발이었고 나대신 가게를 책임지던 발이었습니다. 그때에 아내의 발이 그렇게 투박하게 생긴 줄 처음 알았습니다. 다른 지원자 형제들은 물로 발을 씻겼지만 저는 눈물로 씻겼습니다. <아버지 얼굴만 없는 가족사진을 보며> 아버지학교 수료 후 제 생활은 제가 보기에도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교회에 갈 때 품속에 감추고 다니던 성경책이 이제는 자랑스럽고 주일이면 오전 9시부터 1시간씩 새 가족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꼭 저를 두고 설교하시는 것 같아서 지금도 설교 시간에는 조금 뜨끔합니다. 얼마 전에는 새벽예배를 참석 했는데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밤새껏 노름하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가끔 동네 목욕탕 앞에서 새벽 예배에 가던 아내와 마주칠 때 굉장히 어색하고 미안했었는데 노름하고 집에 들어가야 할 그 시간에 제가 성경책을 버젓이 들고 새벽 예배에 참석 했다니 도대체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 마음이 이상하게 기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가지지 못했던 이상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12월에 서부 비젼나이트 때는 아내한테 성경책을 선물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기 전 찢어버린 성경책을 아내는 저에게 경고라도 하듯이 그때까지도 가게의 책상에다 놔두었는데 사죄하는 마음과 고마움에 성경책을 선물 했습니다.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정말 잘했다 싶었습니다. 우리 집 거실에는 가족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는데 조금 이상한 사진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 맞기는 맞는데 제 사진의 얼굴은 오려져 있습니다. 제 아내와 아이들이 노름꾼 남편과 아빠가 싫다고 제 아내가 가위로 오려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여보! 나 부탁이 있는데 내 부탁 좀 들어줘요. 우리 단풍이 무르익을 때 우리식구 단풍놀이 갑시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사진 찍읍시다. 그래서 날 오려낸 사진 좀 바꿔줘요.”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물론 아내는 흔쾌히 응해 주었고 딸들도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천고마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네 식구는 가족 나들이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집 거실의 액자에는 행복한 미소 짓는 새로운 가족사진이 걸릴 것입니다. 가족 나들이 때에는 아내에게 못되게 했던 행실에 대한 사죄와 도박하는 아빠를 찾으러 심야 택시를 타야했던 예쁜 우리 딸들에게 다시금 용서를 구해야겠습니다. 이 못난 아빠를 용서해 달라고요. 그리고 아내와 자녀를 맘껏 허깅하며 축복기도를 해 주려고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아버지학교를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