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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란지교를 꿈꾸며...
작성자 김은정 작성일 03/04/17 (08:08) 조회수 4565

> >사랑하는 한밭제일교회 가족여러분!! >안녕하세요? > >얼마 전에 읽었던 글인데...오래만에 게시판에 올립니다. >첨부파일에도 붙였으니 ... > >감사합니다. > >샬롬!!  4.15 임영택집사 올림 > >.................................................................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유안진 (시인 1941~ ) >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한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곳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걸. >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道)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 >우리는 흰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하게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 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 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壽衣)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 >답글드림 귀한글을 올려주셨네요..우리모두가 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원하는 그대로 이루워 지기를 ....은정